내가 겪는 말더듬

[말더듬기록] 말이 막힐수록, 나는 나를 더 마주하게 된다

Now Named 2025. 6. 15. 14:21

어릴 땐 말 잘하는 아이였다.
발표도 좋아했고, 먼저 손드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말이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말을 더듬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됐다.



우리 아버지도 말을 더듬고,
사촌형도 그렇다.
유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성격이나 기질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걸 의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말은 더 이상 ‘내 것’ 같지 않았다.
입 밖으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무서워졌다.



그때부터 발표를 피하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눈치를 보게 됐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혼자 위축되고, 혼자 화나고, 혼자 서운해졌다.

친한 친구들이 장난처럼 내 말을 따라할 땐
그게 장난이든 아니든
나에겐 상처였다.
그리고 그럴수록 말은 더 막혔다.



사람들은 말한다.
“침묵은 금이다”

하지만 나는 침묵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었던 침묵은
내겐 금이 아니라 철창이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재밌게도, 멋지게도 말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말문을 열자마자
단어가 막혔고,
돌려 말하느라 어색해지고,
의미도 흐려졌다.

무엇보다…
혹여나 내가 모자란 사람처럼 보일까봐
눈치를 보게 됐다.



그 두려움은
담배 한 갑을 살 때조차 따라왔다.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
혼잣말로 여러 번 연습했다.

“000 한 갑 주세요”

그 말을 단 한 번에
딱 끊김 없이 말했을 때의 쾌감.
내가 이겼다는 그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조용한 알바를 찾았고,
말이 적은 주방일도 해봤다.
전화는 아직도 어렵다.
친구들과는 괜찮지만,
낯선 사람이나 윗사람과의 통화는 지금도 부담스럽다.

'말실수할까,
더듬을까,
상대가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그 짧은 대화조차
내겐 시험처럼 느껴진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화받을 일이 많았는데
어느 날, 상대방이 내 말을 따라하며 웃는 걸 들었다.
그 순간이 오래 남았다.
점호 때 이름을 부를 때조차
말이 막힐까봐 걱정했고,
혼자 속으로 수십 번 연습했다.

그래도 꿋꿋하게 군 생활을 버텼고,
이후 재입학해서는
과대표도 해보고, 발표도 일부러 많이 했다.
말하는 상황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그렇다고 쉽게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면접은 여전히 떨리고,
입이 잠기고,
목이 마르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최근엔 외국에도 다녀왔다.
카페에서, 마트에서
외국인과 직접 말도 해보고
여전히 말이 막히지만
그래도 나는 해본다.
또 나갈 계획이 있다.
그때는 더 당당하게 말해보고 싶다.



나는 혼잣말할 땐 괜찮다.
자연스럽고, 막힘 없고, 오히려 조리 있다.
근데 사람 앞에만 서면
말이 나를 떠난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이렇게 한 줄씩 적는다.
더듬더라도 괜찮고,
막히더라도 괜찮다.

나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도 연습하고, 부딪히고,
다시 입을 연다.



그리고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혹시 나중에 내 아이가 나처럼 말을 더듬게 된다면?

그 걱정이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그 아이는 혼자 침묵하게 두지 않겠다고.

말이 막히기 전에,
자기 목소리를 믿게 해주고 싶다.
스피치 수업이든, 훈련이든 그런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말해도 괜찮아”라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 아이에게 말이
무기가 아니라
자유가 되게 해주고 싶다.

 

이 글은 ‘From No Name’의 실천 루트 중 하나입니다.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나를 증명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며 브랜딩하고자 합니다.